후안 헤라르디


아이티 사례를 다룬 ISA 페이퍼에는 이런 인터뷰가 나온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진실에 대한 보고서는 여론을 흔들기 위한 것이다......과테말라에 가서 택시 운전사들이랑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 사람들이 군대가 마야 사람들을 학살했다고 얘기를 한다......위원회가 보고서를 축약판으로 만들어서 길거리에 수만 부 뿌리기로 결정하지 않았나. 이런 것들이 도움이 되는 것이다."

아이티의 진실위원회 보고서는 순전히 정부용이었던 것을 비판하는 대목이다. 재미있는 것 같아서 기억해 두었다가, 중남미를 연구하는 M교수를 찾아가 조언을 받을 때 써먹어 보았다. 아르헨티나도 사실 과거청산이 그렇게까지 잘 되진 않았고, 과테말라는 아예 안 됐고, 등등 썰을 풀길래

"그래도 아이티에서는 과테말라가 잘 된 편이라고 한다는데요?
택시 기사들도 학살에 대해 다 안다고."
"그거는 규모로 봐서 모를 수가 없어. 마야 사람들을 다 죽이는데 어떻게 몰라?"
"아 그러면 한국전쟁 난걸 한국사람들이 모르는 거에 비유하면 되나?"
"그렇지. 옆동네에 폭탄 떨어진 걸 모르는 격이지."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과테말라 사례를 꼭 알아야만 할 것 같아서 [The Quiet Revolutionaries]라는 책을 빌려와서 읽었다. 책 자체는 안타까운 점이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그래도 끝까지 다 훑어보기는 했다. 책에 의하면 과테말라 정부가 주관한 진실위원회는 그다지 반향이 크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가톨릭 교회의 프로젝트는 인기가 있었다고 하는데, 저자들의 견해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일을 추진하던 주교가 보고서 출간 이틀 후 암살당했다고 하니 그 반향을 짐작할 수 있을 만하다. -_-  구글 검색을 해 보니 1998년 당시 국내 신문들도 모두 이 사건을 보도했었는데 내가 그때 고3이라 신문을 안 읽어서 몰랐나보다. 처음 듣는 이름이다.

과테말라 주교 후안 헤라르디. 이 사람의 죽음에 관련된 부분만 책에서 조금씩 발췌해 본다. (번역은 이것저것 빼먹고 대충 했음.)

"교회가 주관한 보고서가 발표된 지 겨우 이틀 뒤, 헤라르디의 시신이 주차장에서 발견되었다. 발견자는 산세바스티안 교회의 숙소를 같이 쓰고 있던 마리오 오란테스 신부. 헤라르디의 두개골과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깨져 있었다. 부검에 의하면 무거운 시멘트 벽돌로 적어도 17번 이상 직격당했다고 한다. 군대가 개입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퍼져 나갔다.

그러나 조사는 군대에는 초점을 맞추지 않고 진행되었다. 오히려 알콜중독자 한 명이 거의 즉각적으로 체포되었는데, 그가 주교에게 강도짓을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말이 안 되는 얘기로 밝혀졌고 알콜중독자는 바로 석방되었다. 대신 경찰은 교구 요리사와 시신을 발견한 신부, 그리고 그 신부의 개를 구금했다. 검사들은 주인의 명령 하에 개가 주교를 공격했다고 생각한 것 같은데, 주교의 시신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부검의가 시신에 개한테 물린 자국이 있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공식적 발표는 치정 범죄로 결론이 내려졌다. 어떤 버전에 따르면 체포된 오란테스가 헤라르디의 동성애 애인이었는데 여자와 바람을 피우다 걸려 살해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버전에 따르면 오란테스는 동성애자이고 헤라르디는 동성애를 무지 싫어하는데 '현장에서 발각'되는 바람에 살해했다고 한다. 둘 다 말이 되는 얘기는 아닌데, 군대 쪽에서 오란테스에게 협조하지 않으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을 것이라는 얘기는 있었다." (p.140)

그 후 오란테스와 요리사, 세 명의 장교들이 붙잡혀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판결이 내려지기도 전에 판사의 집에 폭탄이 투척되었고, 5-6명의 증인과 판사 한 명, 검사 한 명이 국경을 넘어 도망쳤다.....주교의 집 근처에 살던 여섯 명의 홈리스들이 갑자기 죽었는데, 이들이 살해 당일 밤 뭘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있었다. 그리고 검사 측 증인 한 명이 감옥에서 자살했다." (p.141)

결국 3년 후 재판이 열려 요리사는 무죄 방면, 오란테스 신부는 20년형, 군인들은 30년형을 각각 받았다. 이것은 과테말라 법원이 군대가 개입된 사법외 살인에 대해 내린 최초의 심판으로 기록된다. 그렇지만 인권단체 활동가들이나 기자들에 대한 협박, 고문, 백주대낮 살인 등등은 계속되었고,

"헤라르디 살인 사건의 수석검사는 살해 협박을 수차례 받고 과테말라에서 도망쳤다. 그리고 사회운동가인 자식이 두 명 있었던 판사 한 명은 군중에게 난도질당해 죽었다. 상황이 좀 의심스러웠는데, 군중이 판사를 10시간 이상 붙잡고 있었는데도 경찰은 그를 구출하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그러나 판사의 죽음은 어쩌면 시골 사람들이 사법 기관에 대해 갖는 태도를 보여 주는 것일 수도 있다." (p.143)


이거야 원 다크나이트 꼴이로구만.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추모동영상이다. 눈까마스.


교회 보고서는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을 사망 15만, 실종 5만으로 발표했다고 한다.






by 치애 | 2009/02/05 19:48 | ...천사가 아니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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